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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가장 낮게 뜨는 시간 : When stars hang low
갤러리헤세드 설에덴
2024. 12. 07 - 12. 28
무아리, 이윤정, 조은아, 최지현
별빛이 가장 낮게 뜨는 시간은, 가장 어둡기에 오히려 삶의 이면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2024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갤러리 헤세드의 전시 ‘별들이 가장 낮게 뜨는 시간’은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복합적 층위를 섬세히 조명하며, 존재와 부재, 욕망과 쉼, 그리고 내면과 외부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삶의 본질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며, 단순한 미적 체험을 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현대적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촉구한다. 이러한 과정은 미학적 형식의 확장일 뿐 아니라, 예술이 지닌 사회적 역할과 치유적 가능성을 새롭게 드러낸다.
무아리 작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에 접근하며 욕망과 초월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작품 속에서 통합한다. 그의 작업은 윤회적 구성을 통해 인간이 반복적으로 욕망에 집착하고 이를 통해 다시금 해방을 추구하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생동감 있는 곡선과 화려한 색채는 삶의 역동성을 시각화하며, 동시에 욕망의 순환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다. 작가는 ‘무아(無我)’라는 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이 진정한 내적 평온에 도달하기 위해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관람자에게 삶의 본질적 방향성을 되묻게 하며,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내적 위안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이윤정 작가의 ‘마음이 날다’ 는 초현실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적 관계와 감정의 층위를 다룬다. 그의 작업에서 종이비행기는 단순한 물질적 오브제가 아닌, 기억과 소망, 그리고 관계를 연결하는 상징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작가는 가족의 부재와 관계에서 비롯된 심리적 흔적을 화면에 투영하며, 몽환적 색채와 유기적 구도를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투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작품 속 초현실적 공간은 현실의 연장이면서도 이를 초월하며, 감정적 해방과 치유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와의 심리적 교감을 통해 예술이 지닌 치유적 역할을 구현한다.
조은아 작가의 ‘달콤한 산수’ 시리즈는 전통적 산수화의 형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며, 욕망과 쉼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주제를 화면 속에 병치한다. 그의 작업은 금박과 수묵, 그리고 디저트라는 현대적 오브제를 결합하며, 현실과 이상, 자연과 인공이라는 대비적 요소를 긴장감 속에서 조화롭게 풀어낸다. 디저트는 일상 속에서의 작은 행복과 위안을 상징하는 동시에, 욕망의 은유로 기능한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를 전통 산수화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며 관람자에게 와유(臥遊)의 경험을 제공한다. 화면 속 풍경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욕망과 쉼 사이에서 추구하는 본질적 위안을 담고 있다. 작품은 단순히 이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발견하게 한다.
최지현 작가는 숲이라는 은유적 공간을 통해 현대인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화면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발견의 과정’을 강조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만든다. 작가는 숲 속 동물과 식물, 그리고 자연의 유기적 배치를 통해 보호색에 가려진 우리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작품 속 동물들은 단순히 생태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관계와 사회 속에서 감추고 드러내는 다양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관람자는 화면 속 요소들을 하나씩 발견하며 ‘있지만 없는, 없지만 있는’ 존재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모호성과 관계의 복잡성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재미를 넘어, 삶의 이면과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야기를 재조명하게 한다.
이번 전시 ‘별들이 가장 낮게 뜨는 시간’은 다양한 매체와 표현 방식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적 복잡성과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각 작업은 관람자를 다양한 감정과 사유의 공간으로 이끌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재구성하게 한다. 별들이 가장 낮게 뜨는 순간, 어둠 속에서 비치는 미약한 빛처럼, 이번 전시는 관람자들에게 내면의 빛을 찾고 그것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현대의 복잡한 삶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 순간, 우리가 걸음을 멈추고 별빛 아래 잠시 숨을 고르기를 바라며.